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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키아로스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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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의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영화 제작자이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란 영화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970년부터 40편 이상의 작품을 감독하며, 특히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체리 향기》(1997),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1999) 등의 작품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개인주의적인 영화 제작 스타일과 실험 정신을 통해 허구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였으며, 시, 사진, 오페라 연출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2016년 파리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산은 전 세계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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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키아로스타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3년 키아로스타미
2013년의 키아로스타미
로마자 표기Abbas Kiarostami
출생일1940년 6월 22일
출생지테헤란, 이란 제국
사망일2016년 7월 4일 (76세)
사망지파리, 프랑스
매장지토크 마즈라에 공동묘지, 라바산, 셰미라나트, 이란
국적이란
학력테헤란 대학교
직업영화 감독
사진가
프로듀서
화가
시인
활동 기간1962년–2016년
배우자دادخواهی بر سر میراث فرهنگی کیارستمی
자녀Ahmad
Bahman
서명
영화 경력
활동 시기1970년 - 2016년
사조이란 뉴 웨이브
스타일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시 영화
대표 작품친구는 어디에 있나요?
클로즈업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체리 향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토스카나의 여름
사랑에 빠진 것처럼
각본 작품하얀 풍선
칸 영화제 수상황금종려상 1997년 체리 향기
유스상 2010년 토스카나의 여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수상심사위원 특별대상 1999년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1999년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감독 만세!상 2008년 시린
전미 비평가 협회상 수상외국어 영화상 1998년 체리 향기
기타 수상1996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1997년 유네스코 펠리니 메달
2000년 샌프란시스코 국제 영화제 구로사와
2004년 다카마쓰노미야 기념 세계문화상
2005년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명예 표범상
2008년 자무시드의 잔 상

2. 이력

테헤란에서 태어나 테헤란 대학교 예술학부에서 공부했다. 1970년부터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며, 현대 이란 영화를 대표하는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40편 이상의 작품을 감독했다.

1987년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97년체리 향기》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1999년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2005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128]

2010년사랑을 위한 거짓말》, 2012년사랑은 없다》 등 이란이 아닌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6년 7월 4일, 암 치료를 위해 방문했던 파리에서 사망했다.[110][112]

2. 1. 초기 생애와 교육

키아로스타미는 테헤란 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테헤란에서 태어난 키아로스타미는 테헤란 대학교 예술학부에서 회화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97] 학비는 교통 경찰로 일하면서 충당했다.[10]

1960년대에 키아로스타미는 화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광고 분야에서 일하며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광고를 제작했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이란 텔레비전을 위해 약 150개의 광고를 촬영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마수드 키미아이의 ''게이서''와 같은 영화의 크레딧 타이틀을 제작하고 어린이 책에 삽화를 그렸다.[97][11]

1970년, 다리우시 메르후이의 영화 ''가브''가 개봉되면서 이란 뉴 웨이브가 시작되었을 때, 키아로스타미는 테헤란에 있는 아동 청소년 지적 개발 연구소(카눈)에 영화 제작 부서를 설립하는 것을 도왔다. 이 부서의 데뷔작이자 키아로스타미의 첫 영화는 학교 소년이 공격적인 개와 대면하는 내용을 담은 12분짜리 네오 리얼리즘 단편 영화 ''빵과 골목''(1970)이었다. 1972년에는 ''브레이크타임''이 뒤를 이었다. 이 부서는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스튜디오 중 하나가 되었으며,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뿐만 아니라 ''러너''와 ''바슈, 작은 이방인''과 같은 호평을 받은 페르시아 영화도 제작했다.[97]

2. 2. 영화 경력

테헤란 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1970년 단편 영화 『빵과 뒷골목』으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1973년에는 첫 장편 ''Tadjrebeh''를 제작했다.

이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년), 『올리브 나무 아래로』(1994년) 삼부작을 제작하여 명성을 얻었다. 1997년체리 향기』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1999년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현대 이란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 엑상 프로방스 음악제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크리스토프 루세 지휘)를 연출했으나, 공동 제작사인 잉글리쉬 국립 오페라의 2009년 공연에는 영국 비자 문제로 참여하지 못했다.

2010년 칸 영화제에 출품된 프랑스·이탈리아 합작 영화 『사랑을 위한 거짓말』은 줄리엣 비노쉬에게 최우수 여우상을 안겼지만, 비노쉬가 키아로스타미의 불참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란 내 상영 금지와 비노쉬의 입국 금지 조치를 야기했다.[111] 2012년에는 일본에서 『사랑은 없다』를 제작했다.

2. 2. 1. 1970년대: 초기 작품 활동

1970년부터 영화 감독의 길에 들어선 키아로스타미는 현대 이란 영화를 대표하는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40편 이상의 작품을 감독했다. 1983년에는 《시민》을 연출하기 전, 1980년대 초에 《충치(1980)》, 《질서와 무질서(1981)》, 《합창(1982)》을 포함한 여러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키아로스타미가 이란 밖에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가 개봉되면서부터였다.[17][18] 이 영화는 이란의 시골 풍경을 시적으로 사용하고 현실주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며, 여덟 살 소년이 친구가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웃 마을에 있는 친구의 공책을 돌려주기 위한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란 시골 사람들의 전통적인 믿음이 묘사되며, 키아로스타미는 어린이의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 《올리브 나무 아래로(1994)》는 이란 북부의 코케르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비평가들에게 "코케르 삼부작"으로 묘사된다.

2. 2. 2. 1980년대: 국제적 인정

1970년부터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초에는 《충치(1980)》, 《질서와 무질서(1981)》, 《합창(1982)》, 《시민(1983)》 등 여러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1987년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통해 이란 밖에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17][18] 이 영화는 친구가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주려는 여덟 살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란 시골 사람들의 전통적인 믿음과 시적인 풍경, 현실주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 《올리브 나무 아래로(1994)》는 이란 북부 코케르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코케르 삼부작"으로 불리며, 1990년 만질-루드바르 지진을 소재로 삶, 죽음, 변화, 지속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19] 이 삼부작은 1990년대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핀란드 등 서유럽 국가에서 성공을 거두었다.[19] 키아로스타미는 이 세 편을 삼부작으로 보지 않고, 마지막 두 편과 《체리 향기(1997)》가 삶의 소중함을 다룬다는 점에서 삼부작을 이룬다고 보았다.[20] 1987년에는 키아로스타미가 편집에 참여한 《열쇠》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고, 1989년에는 《숙제》를 발표했다.

2. 2. 3. 1990년대: 코케르 3부작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를 통해 키아로스타미는 이란 밖에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17][18] 이 영화는 친구가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양심적인 여덟 살 소년이 이웃 마을에 있는 친구의 공책을 돌려주기 위한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란 시골 사람들의 전통적인 믿음이 묘사되며, 이란의 시골 풍경을 시적으로 사용하고 현실주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그는 어린이의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 《올리브 나무 아래로》(1994)는 비평가들에 의해 "코케르 삼부작"으로 묘사되는데, 세 영화 모두 이란 북부의 코케르 마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들은 또한 4만 명이 사망한 1990년 만질-루드바르 지진과 관련이 있으며, 키아로스타미는 삶, 죽음, 변화, 그리고 지속이라는 주제를 사용하여 영화들을 연결했다. 이 삼부작은 1990년대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핀란드와 같은 다른 서유럽 국가에서 성공을 거두었다.[19] 하지만, 키아로스타미는 이 세 편의 영화가 삼부작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두 편의 영화와 《체리 향기》(1997)가 삶의 소중함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삼부작을 구성한다고 제안했다.[20]

2. 2. 4. 2000년대: 다양한 실험과 국제적 협업

2000년대에 키아로스타미는 다양한 실험적인 영화 작업을 이어갔다. 2005년에는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다.[128] 그는 1993년 칸 영화제, 2002년 칸 영화제, 2005년 칸 영화제 등 수많은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특히 2005년 칸 영화제에서는 황금 카메라상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칸 영화제의 시네파운데이션과 단편 영화 부문 심사위원장으로도 발표되었다.

그 외에도 1985년 베니스 영화제, 1990년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1996년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2004년 상파울루 국제 영화제, 2007년 카팔비오 영화제(심사위원장), 2011년 퀴스텐도르프 영화 & 음악 페스티벌 등 여러 영화제에 참여했다. 그는 또한 포르투갈의 에스토릴 영화제를 포함하여 유럽 전역의 많은 다른 영화제에 정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에는 엑상 프로방스 음악제의 의뢰로 모차르트 작곡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크리스토프 루세 지휘)를 연출했다. 공동 제작이었던 잉글리쉬 국립 오페라에서의 2009년 상영 공연 시에는 영국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연출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2. 2. 5. 2010년대: 해외 제작과 유작

2010년 칸 영화제에서 발표된 프랑스·이탈리아 합작 영화 《사랑을 위한 거짓말》은 최우수 여우상을 수상한 줄리엣 비노쉬가 감독이 현장에 올 수 없는 것에 대해 비판하여 이란 국내에서 상영 금지 및 비노쉬의 입국 금지령이 내려지는 사건[111]이 일어났다.

2012년에는 일본에서 《사랑은 없다》를 제작했다. 2016년 7월 4일, 암 치료를 위해 방문했던 파리에서 사망했다.[110][112]

2. 3. 영화제 활동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2005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다.[128] 1997년에는 《체리 향기》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1999년에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3. 영화 스타일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모호함, 단순함과 복잡함의 혼합, 허구와 다큐멘터리 요소의 혼합(다큐픽션) 등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그는 "우리는 거짓말을 통해서만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97][54]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는 허구와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하다.[55]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특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언급하며, 그의 영화가 허구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증거"''라고 주장한다. 즉, 단순한 묘사나 보고가 아니라, "예술"을 통해 세계를 열고 그 안에서 자신을 앞서는 "증거"를 제시한다는 것이다.[56]

낭시는 영화를 ''"증거"''로 보는 개념이 키아로스타미가 삶과 죽음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의 영화는 단순히 죽음이 아닌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57] 삶과 죽음을 대립이 아닌, 자연의 각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사실"을 제시하는 것 이상을 하는 영화를 고안했지만, ''"존재"''는 단순히 삶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투사적이고 허구적인 요소를 포함하기에, 삶 "이상"인 이 존재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의해 오염된다. 낭시는 거짓말이 진실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키아로스타미의 말에 대한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58][59]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113][114][115][116][117][118] 키아로스타미는 스스로 오즈의 팬임을 밝혔으며,[120] 오즈에게 헌정하는 영화 《Five|5 five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치는〜영어》를 제작했다.[121] 이란 혁명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란을 떠났지만,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에 남아 아마추어 배우를 기용하면서까지 인간의 마음을 그리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다.[126]

3. 1. 개인주의와 실험 정신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단순함과 복잡함, 허구와 다큐멘터리의 요소(다큐픽션)를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는 거짓말을 통해서만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97][54]

그의 영화에서는 허구와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하다.[55]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특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 대해 언급하며, 그의 영화가 허구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증거"''라고 주장했다. 즉, 단순한 묘사나 보고가 아니라, 이미지 구성의 기술, 즉 "예술"을 통해 세계를 열고 그 안에서 자신을 앞서는 "증거"를 제시한다는 것이다.[56]

장 뤽 낭시는 영화를 ''"증거"''로 보는 이러한 개념은 키아로스타미가 삶과 죽음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영화는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57] 즉, 삶과 죽음을 단순한 대립이 아닌, 자연의 각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거짓말이 진실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키아로스타미의 말에 대한 해석의 단서를 제공한다.[58][59]

변화와 연속성이라는 개념은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와 함께 키아로스타미 작품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주제는 ''코케르 삼부작''에서 두드러지며, 1990년 만질-루드바르 지진 이후 파괴를 극복하고 거부하는 인간의 회복력을 보여준다.[60]

코케르 영화들이 생존 본능을 다룬다면, ''체리 향기''는 삶의 연약함과 소중함을 탐구한다.[20]

일부 평론가들은 ''체리 향기''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와 같은 영화에서 밝고 어두운 장면의 조합이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죽음의 공존을 암시한다고 본다.[61]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113][114][115][116][117][118] 키아로스타미는 스스로 오즈의 팬임을 밝혔으며,[120] 오즈에게 헌정하는 영화 《Five|5 five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치는〜영어》를 제작하기도 했다.[121] 이란 혁명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란을 떠났지만,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에 남아 아마추어 배우를 기용하면서까지 인간의 마음을 그리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다.[126]

3. 2. 허구와 논픽션의 경계

키아로스타미가 영화를 연출하고 있다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는 허구와 논픽션의 경계가 상당히 줄어든다.[55] 그는 "우리는 거짓말을 통해서만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97][54]

특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 대해 글을 쓴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정확히 허구도 아니고 정확히 다큐멘터리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묘사도 아니고 보고서도 아닌, 오히려 ''"증거"''라고 말한다.

> [그것은] 모두 보고서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은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허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실제로 키아로스타미는 지진 몇 달 후에 이 영화를 촬영했다), 그것은 오히려 "허구"에 관한 문서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비현실을 상상하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지 구성의 기술, 즉 "예술"의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한 의미에서. 왜냐하면, 매번, 각각 세계를 열고 그 안에서 자신을 앞서는 이미지는 미리 주어진 것(꿈, 환상 또는 형편없는 영화의 이미지와 같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발명되고, 잘리고 편집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증거"이다. 왜냐하면, 언젠가 내가 하루에 열 번씩 오가는 내 거리를 "본다면", 나는 잠시 동안 내 거리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구성하기 때문이다.[56]

장 뤽 낭시에게, 다큐멘터리나 상상력이 아닌 영화를 ''"증거"'로 보는 이 개념은 키아로스타미가 삶과 죽음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ABC 아프리카》에 대한 제프 앤드류의 언급처럼,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 존재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에 저항하며, 기계적인 "삶"을 넘어 살아가며, 항상 자신의 애도와 자신의 기쁨이다. 그것은 형상, 이미지가 된다. 그것은 이미지에 소외되지 않고, 그곳에 제시된다. 이미지는 그것의 존재의 증거, 그것의 주장의 객관성이다. 나에게 이것이 이 영화[《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바로 그 생각인 이 생각은 어려운 생각, 아마도 가장 어려운 생각이다. 그것은 느린 생각이며, 항상 진행 중이며, 길 자체가 생각이 되도록 길을 헤진다. 그것은 이미지가 이 생각이 되도록, 즉 이 생각의 증거가 되도록 이미지를 헤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57]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을 단지 대립하는 힘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자연의 각 요소가 어떻게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키아로스타미는 시청자에게 문서화할 수 있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 이상을 하는 영화를 고안했지만, 그것은 단지 기교의 문제도 아니다. 왜냐하면 ''"존재"''는 단순히 삶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투사적이고, 불가피하게 허구적인 요소를 포함하지만, 삶 "이상"인 이 존재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의해 오염되기 때문이다. 낭시는 거짓말이 진실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키아로스타미의 진술에 대한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58][59]

메릴랜드 대학교의 아흐마드 카리미-하칵은 키아로스타미 영화 스타일의 한 측면은 페르시아 시의 본질을 포착하여 영화의 풍경 안에 시적 이미지를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영화 중 몇 편, 예를 들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에서는 고전 페르시아 시가 영화에서 직접 인용되어 예술적 연관성과 그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이는 결국 과거와 현재, 지속성과 변화 사이의 연결을 반영한다.[62]

등장인물들은 주로 오마르 하이얌, 소흐랍 세페리, 포루그 파로흐자드와 같은 고전 및 현대 페르시아 시인들의 시를 읊는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의 한 장면은 금빛 물결이 이는 밀밭을 롱숏으로 보여주며, 그 길을 의사가 영화 제작자와 함께 스쿠터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달린다. 다른 세상이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라는 말에 의사는 하이얌의 이 시를 읊는다.[61]

> 그들은 천국에서 후리들을 약속하지만

> 나는 술이 더 낫다고 말하리라

> 현재를 약속에 가져가라

> 멀리서 드럼 소리가 멜로디컬하게 들린다


키아로스타미가 소흐랍 세페리와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를 각색한 창의적 공로는 텍스트 변형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주장이 있다. 각색은 이전 텍스트를 새로운 텍스트로 변환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워싱턴 대학교의 시마 다드는 키아로스타미의 각색이 텍스트 간의 잠재력에서 장르 간의 잠재력으로 그 한계를 확장함으로써 각색의 이론적 영역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63]

3. 3.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키아로스타미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1990년 작 클로즈업은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사칭한 남자의 실화를 다룬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혼합 형식으로, 정체성과 예술적 감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21][22] 이 영화는 영국 영화 협회의 역대 최고의 영화 50편 중 42위에 올랐으며, 쿠엔틴 타란티노, 마틴 스코세지 등 유명 감독들의 찬사를 받았다.[23]

1992년에는 '코케르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통해 1990년 대지진 이후의 삶의 의지를 그려냈다.[25][26][27] 이 작품으로 키아로스타미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코케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올리브 나무 아래로(1994)는 전작의 주변부 이야기를 중심으로 확장하여 삶과 세계의 연결을 탐구했다.[28]

체리 향기(1997)는 자살을 결심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가치와 연민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으로, 199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31]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1999)는 도시와 농촌의 삶의 대비를 통해 노동의 존엄성, 성 평등 등의 주제를 다루며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19]

2000년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상을 수상했지만, 이를 이란 배우 베흐루즈 보소기에게 양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34][35]

ABC 아프리카(2001)는 우간다 고아들의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36] 텐(2002)은 테헤란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여정을 통해 이란 사회의 모습을 담아냈다.[33] 파이브(2003)는 대사 없이 자연 풍경만을 담은 실험적인 작품으로, 삶의 순환과 재생의 의미를 표현했다.[39][40]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허구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고,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의 관계를 탐구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증거'로 정의하며, 단순한 묘사나 보고가 아닌, 세계를 열고 그 안에서 자신을 앞서는 이미지의 구성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56][57] 이러한 철학적 접근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과 같은 감독들과의 비교로 이어지기도 한다.[64]

3. 4. 시와 이미지

키아로스타미는 사진작가이자 시인이었다. 그의 시 200편 이상을 담은 이중 언어 시집 『바람과 함께 걷다』가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1978년부터 2003년까지 테헤란에서 찍은 눈 덮인 풍경 사진 30점 이상을 모은 『무제 사진』도 그의 사진 작품이다. 1999년에는 시집도 출판했다.[97][67] 또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를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2003년 엑상프로방스에서 초연된 후 2004년 런던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에서 공연되었다.[40]

베네치아 카 포스카리 대학교의 리카르도 지폴리는 키아로스타미의 시와 영화 사이의 관계와 상호 연결성을 연구했다. 분석 결과, 키아로스타미가 "불확실한 현실"을 다루는 방식이 그의 시와 영화에서 어떻게 유사한지를 보여준다.[68]

키아로스타미의 시는 페르시아 화가이자 시인인 소랍 세페리의 후기 자연시를 연상시킨다. 철학적 진리를 간결하게 암시하고, 시적 목소리의 비판적이지 않은 어조, 인칭 대명사, 부사 또는 형용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없는 시의 구조, 그리고 "계절어"인 ''kigo'' (계절어)를 포함하는 구절은 이 시의 많은 부분에 하이쿠와 같은 특징을 부여한다.[66]

키아로스타미의 세 권의 시집과 니마, 하페즈, 루미, 사디를 포함한 고전 및 현대 페르시아 시인들의 선집은 2015년에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뉴욕의 Sticking Place Books에서 이중 언어 (페르시아어/영어) 판으로 출판되었다.

3. 5. 영성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상당한 정도의 모호함, 단순함과 복잡함의 기묘한 조화, 그리고 종종 허구와 다큐멘터리 요소의 혼합(다큐픽션)을 담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는 "우리는 거짓말을 통해서만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97][54]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는 허구와 논픽션의 경계가 상당히 흐려진다.[55]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특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 대해 언급하며, 그의 영화가 정확히 허구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낭시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묘사도 보고서도 아닌, ''"증거"''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모두 보고서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은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허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실제로 키아로스타미는 지진 몇 달 후에 이 영화를 촬영했다), 그것은 오히려 '허구'에 관한 문서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비현실을 상상하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지 구성의 기술, 즉 '예술'의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한 의미에서. 왜냐하면, 매번, 각각 세계를 열고 그 안에서 자신을 앞서는 이미지는 미리 주어진 것(꿈, 환상 또는 형편없는 영화의 이미지와 같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발명되고, 잘리고 편집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증거'이다. 왜냐하면, 언젠가 내가 하루에 열 번씩 오가는 내 거리를 '본다면', 나는 잠시 동안 내 거리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구성하기 때문이다."프랑스어[56]

장 뤽 낭시는 다큐멘터리나 상상력이 아닌 영화를 ''"증거"''로 보는 이 개념은 키아로스타미가 삶과 죽음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존재'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에 저항하며, 기계적인 '삶'을 넘어 살아가며, 항상 자신의 애도와 자신의 기쁨이다. 그것은 형상, 이미지가 된다. 그것은 이미지에 소외되지 않고, 그곳에 제시된다. 이미지는 그것의 존재의 증거, 그것의 주장의 객관성이다. 나에게 이것이 이 영화[《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바로 그 생각인 이 생각은 어려운 생각, 아마도 가장 어려운 생각이다. 그것은 느린 생각이며, 항상 진행 중이며, 길 자체가 생각이 되도록 길을 헤진다. 그것은 이미지가 이 생각이 되도록, 즉 이 생각의 증거가 되도록 이미지를 헤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프랑스어[57]

낭시는 삶과 죽음을 단지 대립하는 힘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자연의 각 요소가 어떻게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키아로스타미는 시청자에게 문서화할 수 있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 이상을 하는 영화를 고안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지 기교의 문제도 아니다. ''"존재"''는 단순히 삶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투사적이고 불가피하게 허구적인 요소를 포함하지만, 삶 "이상"인 이 존재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의해 오염되기 때문이다. 낭시는 거짓말이 진실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키아로스타미의 진술에 대한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58][59]

4. 시, 예술, 사진 활동

키아로스타미는 장 콕토, 사티야지트 레이,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데릭 저먼,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와 더불어 시, 세트 디자인, 그림 또는 사진과 같은 다른 장르에서도 자신을 표현한 영화 제작자였다. 그들은 세계에 대한 해석과 우리의 관심사 및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표현했다.[66]

키아로스타미는 유명한 사진작가이자 시인이었다. 그의 시 200편 이상을 담은 바이링구얼 시집, 『바람과 함께 걷다』가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그의 사진 작품으로는 1978년부터 2003년까지 그의 고향 테헤란에서 찍은 눈 덮인 풍경 사진 30점 이상을 모은 『무제 사진』이 있다. 1999년에는 시집도 출판했다.[97][67] 키아로스타미는 또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를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2003년 엑상프로방스에서 초연된 후 2004년 런던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에서 공연되었다.[40]

베네치아 카 포스카리 대학교의 리카르도 지폴리는 키아로스타미의 시와 그의 영화 사이의 관계와 상호 연결성을 연구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키아로스타미가 "불확실한 현실"을 다루는 방식이 그의 시와 영화에서 어떻게 유사한지를 보여준다.[68]

키아로스타미의 시는 페르시아 화가이자 시인인 소랍 세페리의 후기 자연시를 연상시킨다. 한편, 숙고할 필요 없이 철학적 진리를 간결하게 암시하고, 시적 목소리의 비판적이지 않은 어조, 그리고 시의 구조—인칭 대명사, 부사 또는 형용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의 부재—뿐만 아니라 "계절어"인 ''kigo'' (계절어)를 포함하는 구절은 이 시의 많은 부분에 하이쿠와 같은 특징을 부여한다.[66]

키아로스타미의 세 권의 시집과 니마, 하페즈, 루미, 사디를 포함한 고전 및 현대 페르시아 시인들의 선집은 2015년에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뉴욕의 Sticking Place Books에서 바이링구얼 (페르시아어/영어) 판으로 출판되었다.

5. 개인사

키아로스타미는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그의 첫 예술적 경험은 그림이었으며, 10대 후반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18세에 그림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 후 집을 나와 테헤란 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97] 그는 교통 경찰로 일하며 학비를 충당했다.[10]

1960년대에 키아로스타미는 광고 분야에서 일하며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광고를 제작했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이란 텔레비전을 위해 약 150개의 광고를 촬영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마수드 키미아이의 ''게이서''와 같은 영화의 크레딧 타이틀을 제작하고 어린이 책에 삽화를 그렸다.[97][11]

1969년, 키아로스타미는 파르빈 아미르-골리와 결혼하여 아흐마드와 바흐만 두 아들을 두었으나, 1982년에 이혼했다.

키아로스타미는 1979년 혁명 이후에도 많은 동료들이 국외로 도피한 상황에서 이란에 남았던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라고 믿었다. 이란에서의 영구적인 기반과 그의 국가적 정체성은 영화 제작자로서 그의 능력을 강화시켰다고 한다.

>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면 그 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더라도 원래 있던 곳만큼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만약 제가 제 나라를 떠났다면, 저는 그 나무와 같았을 것입니다.[69]

키아로스타미는 빛에 대한 민감성 때문에 자주 어두운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착용했다.[70]

6. 질병과 죽음

2016년 3월, 키아로스타미는 장 출혈로 입원하여 두 번의 수술을 받은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보도되었다.[71] 이란 보건부 대변인을 포함한 소식통들은 키아로스타미가 위장관 암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71][72] 그러나 2016년 4월 3일, 키아로스타미의 의료팀 책임자인 레자 파이다르는 영화감독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72] 6월 말 그는 파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이란을 떠났고,[73] 그곳에서 2016년 7월 4일 사망했다.[74] [110][112] 그는 사망 일주일 전 아카데미상 심사위원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아카데미상에 초청받았다.[75] 이란의 프랑스 대사인 알리 아하니는 키아로스타미의 시신이 베헤슈테 자흐라 묘지에 안장되기 위해 이란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했다.[76] 그러나 이후 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이 파리에서 테헤란으로 운구된 후 테헤란에서 북동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휴양 도시인 라바산에 묻힐 것이라고 발표되었다.[77] 그의 시신은 2016년 7월 8일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으로 돌아왔으며, 이란 영화감독, 배우, 기타 예술가들이 테헤란 공항에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78]

영화감독이자 절친한 친구인 모하마드 시르바니는 2016년 6월 8일 페이스북에 키아로스타미의 말을 인용했다. "더 이상 영화를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들[의료진]이 내 [소화 기관]을 파괴했다." 이 발언 이후, 키아로스타미의 시술 과정에서 의료 과실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한 캠페인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이란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의 장남인 아흐마드 키아로스타미는 시르바니의 발언 이후 아버지의 치료에 어떠한 의료 과실도 없다고 부인하며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키아로스타미 사망 후, 이란 의료 위원회 회장 알리레자 잘리 박사는 프랑스 측에 키아로스타미의 의료 기록을 이란으로 보내 추가 조사를 해달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79] 키아로스타미 사망 9일 후인 2016년 7월 13일, 그의 가족은 키아로스타미의 주치의를 통해 의료 과실에 대한 공식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또 다른 유명한 이란 영화감독인 다리우시 메르주이도 키아로스타미를 치료한 의료진을 비판하며 법적 조치를 요구했다.

마틴 스코세지는 이 소식에 "깊은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80] 아카데미상 수상 이란 영화 제작자 아쉬가르 파라디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날아갈 예정이었는데, "매우 슬프고,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도 같은 감정을 드러내며, 이란 영화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동료 감독 덕분이지만, 이러한 인지도가 그의 조국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더 큰 가시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키아로스타미는 이란 영화에 오늘날의 국제적 신뢰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영화는 이란에서 그렇게 많이 상영되지 않았다. 그는 세계 영화를 변화시켰고, 할리우드의 거친 버전과 대조적으로 영화를 새롭게 하고 인간적으로 만들었다."[74] 페르시아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인 잘랄 앗딘 루미의 22촌 조카인 에신 첼레비 또한 키아로스타미의 사망에 대한 애도를 별도의 메시지로 표했다. 유네스코인 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의 이란 대표 사무소도 키아로스타미를 기리기 위해 서명을 위한 추모록을 열었다.[81]

이란 대통령 하산 로하니는 트위터를 통해 감독의 "삶에 대한 다르고 심오한 태도와 평화와 우정에 대한 초대"가 "지속적인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82] 외무부 장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또한 키아로스타미의 죽음은 국제 영화계의 손실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성명을 통해 감독이 프랑스와 "긴밀한 예술적 유대와 깊은 우정"을 맺은 것을 칭찬했다.

''뉴욕 타임스'', CNN, ''가디언'', ''허핑턴 포스트'', ''인디펜던트'', ''AP 통신'', ''유로뉴스'' 및 ''르몽드''와 같은 언론도 키아로스타미의 죽음에 반응했다. ''뉴욕 타임스''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호평받는 이란 영화감독, 76세로 사망"[83]이라고 썼고, 피터 브래드쇼는 키아로스타미를 "영화적 시의 정교하고 자제력 있는 대가"라고 찬사를 보냈다.[84]

파리에서 이 추모식에 모인 군중은 센 강에서 밤샘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센 강의 물결이 군중이 강에 띄워 놓은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을 휩쓸어가도록 했다. 그것은 많은 이란인들이 열렬히 존경하게 된 영화감독에게 작별을 고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라바산에 있는 키아로스타미의 묘


예술가, 문화계 인사, 정부 관계자, 그리고 이란 국민들은 7월 10일, 프랑스에서 사망한 지 6일 만에 열린 감동적인 장례식에서 키아로스타미와 작별을 고했다. 이 행사는 그가 약 40년 전 영화 경력을 시작한 어린이 청소년 지적발달 연구소에서 열렸다.[85] 참석자들은 그의 영화 제목이 적힌 현수막과 가장 유명한 포스터 사진을 들고 키아로스타미가 문화, 특히 이란 영화 제작에 기여한 지원을 칭찬했다. 이 행사는 유명한 이란 배우 파르비즈 파라스투이가 사회를 맡았으며, 화가 아이딘 아그다슐루와 수상 경력의 영화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연설이 있었는데, 그는 키아로스타미의 전문적인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나중에 테헤란 북부 도시인 라바산에서 비공개 장례를 치렀다.[86][87][88]

7. 유산과 평가

마틴 스코세지는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소식에 "깊은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80] 아쉬가르 파라디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갈 예정이었는데, "매우 슬프고,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이란 영화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키아로스타미 감독 덕분이지만, 이러한 인지도가 그의 조국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더 큰 가시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키아로스타미는 이란 영화에 오늘날의 국제적 신뢰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영화는 이란에서 그렇게 많이 상영되지 않았다. 그는 세계 영화를 변화시켰고, 할리우드의 거친 버전과 대조적으로 영화를 새롭게 하고 인간적으로 만들었다."[74] 잘랄 앗딘 루미의 22촌 조카인 에신 첼레비 또한 키아로스타미의 사망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유네스코 이란 대표 사무소도 키아로스타미를 기리기 위해 추모록을 열었다.[81]

이란 대통령 하산 로하니는 트위터를 통해 감독의 "삶에 대한 다르고 심오한 태도와 평화와 우정에 대한 초대"가 "지속적인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82]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부 장관 또한 키아로스타미의 죽음은 국제 영화계의 손실이라고 말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감독이 프랑스와 "긴밀한 예술적 유대와 깊은 우정"을 맺은 것을 칭찬했다.

''뉴욕 타임스'', CNN, ''가디언'', ''허핑턴 포스트'', ''인디펜던트'', ''AP 통신'', ''유로뉴스'' 및 ''르몽드''와 같은 언론도 키아로스타미의 죽음에 반응했다. ''뉴욕 타임스''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호평받는 이란 영화감독, 76세로 사망"[83]이라고 썼고, 피터 브래드쇼는 키아로스타미를 "영화적 시의 정교하고 자제력 있는 대가"라고 찬사를 보냈다.[84]

파리에서 추모식에 모인 군중은 센 강에서 밤샘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센 강의 물결이 군중이 강에 띄워 놓은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을 휩쓸어가도록 했다.

2020년 8월,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Ten)》에 출연했던 마니아 아크바리는 키아로스타미가 자신의 동의 없이 아크바리가 촬영한 사적인 영상을 편집하여 영화에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표절 혐의를 제기했다.[89][90] 아크바리의 딸이자 《사랑을 카피하다》에 출연했던 아미나 마헤르는 2019년 단편 영화 《나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랑을 카피하다》 속 자신의 장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촬영되었다고 말했다.[91][92] 2022년, 아크바리와 마헤르는 배급사 MK2|MK2프랑스어에게 영화 유통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MK2는 아직 응답하지 않았다. 영국 영화 협회는 키아로스타미 회고전에서 《사랑을 카피하다》를 제외했다.[93][94]

2022년, 아크바리는 키아로스타미가 테헤란에서 자신이 25세, 그가 60세 정도였을 때, 그리고 《사랑을 카피하다》가 초연된 후 런던에서 두 번 자신을 강간했다고 고발했다.[93][94]

키아로스타미는 전 세계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작품에 대한 찬사를 받았으며, 1999년에는 두 개의 국제 평론가 투표에서 1990년대 가장 중요한 이란 영화 감독으로 선정되었다.[95] 그의 영화 4편이 시네마테크 온타리오의 90년대 최고 영화 투표에서 6위 안에 들었다.[96] 그는 장 뤽 고다르, 난니 모레티, 크리스 마르케와 같은 동료 영화 감독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사티야지트 레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매우 우울했다. 하지만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고 그의 자리를 제대로 이어받을 사람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라고 말했다.[97]

마틴 스코세지는 "키아로스타미는 영화 예술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라고 언급했다.[98] 미하엘 하네케 오스트리아 감독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을 현존하는 모든 감독의 작품 중 최고로 존경했다.[99] 2006년, ''가디언''은 비평가 패널을 통해 키아로스타미를 최고의 현대 비 미국 영화 감독으로 선정했다.[100]

조나단 로젠바움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관객을 분열시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모국인 이란, 그리고 그의 영화가 상영되는 모든 곳에서 그렇다."라고 주장했다.[26] 로젠바움은 키아로스타미 영화에 대한 의견 불일치와 논란은 그의 영화 제작 스타일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데, 할리우드에서 필수적인 내러티브 정보로 여겨지는 것들이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는 자주 누락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적 표현의 섬세함은 비평적 분석에 거의 저항한다고 주장한다.[101]

아스가르 파르하디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장례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란 테헤란


키아로스타미는 그의 여러 영화로 유럽에서 상당한 찬사를 받았지만, 이란 정부는 그의 영화 상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내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혹시라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 메시지가 전달될까 봐 상영을 막는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98]

9.11 테러 이후, 키아로스타미는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 뉴욕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102][103] 그를 초청했던 리처드 페냐 영화제 감독은 "이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끔찍한 징조이며, 이 일이 무슬림 세계 전체에 어떤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는지 아무도 깨닫거나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98] 아키 카우리스마키 핀란드 영화 감독은 이에 항의하여 영화제를 보이콧했다.[104] 키아로스타미는 뉴욕 영화제뿐만 아니라 오하이오 대학교하버드 대학교에서도 초청을 받았다.[105]

2005년, 런던 영화학교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예술가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워크숍과 키아로스타미의 작품 영화제를 개최했다. 런던 영화학교의 벤 깁슨 이사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즉 처음부터 영화를 창조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지적인 명확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키아로스타미와 같은 거장이 즉석에서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행운이다."라고 말했다.[106] 그는 나중에 명예 준회원이 되었다.

2007년, 현대 미술관과 MoMA PS1은 공동으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미지 메이커''라는 제목의 키아로스타미 작품 영화제를 개최했다.[107]

키아로스타미와 그의 영화 스타일은 여러 권의 책과 세 편의 영화, 즉 난니 모레티가 감독한 ''클로즈업의 개막''(1996), 팻 콜린스와 퍼거스 데일이 감독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삶의 예술''(2003), 바흐만 마그소울루가 감독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보고서''(2014)의 주제가 되었다.

키아로스타미는 월드 시네마 재단 자문 위원이었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설립한 이 재단의 목표는 오랫동안 소외된 세계 영화를 찾아 복원하는 것이다.[108]

8. 수상 내역

연도수상 내역작품영화제
1987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파지르 영화제
1989동표범상『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1992로베르토 로셀리니 상
1992영화 발견상(Prix Cine Decouvertes)
1992국제 영화 비평가 연맹상『클로즈업』이스탄불 국제 영화제
1993프랑수아 트뤼포
1994실버 휴고상『올리브 나무 그늘에서』시카고 국제 영화제
1994비평가상『올리브 나무 그늘에서』상파울루 국제 영화제
1994골든 스파이크상『올리브 나무 그늘에서』바야돌리드 국제 영화제
1995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1995감독상『올리브 나무 그늘에서』싱가포르 국제 영화제
1997페데리코 펠리니 금메달유네스코
1997황금종려상체리 향기칸 영화제
1999명예 황금 알렉산더 상테살로니키 국제 영화제
1999은사자상『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2000구로사와 아키라
2003명예 박사 학위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2003콘라트 볼프 상
2005황금 카메라상 심사위원장칸 영화제
2005영국 영화 협회 펠로우
2005황금 표범상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2006앙리 랑글루아 상
2007명예 박사 학위툴루즈 대학교
2007세계의 거장콜카타 국제 영화제
2008영화 제작자 영광상베니스 영화제
2010명예 박사 학위파리 대학교
2010세계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상BIAFF – 바투미 국제 예술 영화제
2010골든 스파이크상사랑을 카피하다바야돌리드 국제 영화제
2013일본 훈장
2014오스트리아 과학예술 훈장
2014명예 황금 오렌지 상안탈리아 국제 영화제



키아로스타미는 전 세계 관객과 비평가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2000년까지 최소 70개의 상을 받았다.[109]

9. 작품 목록

연도영화감독각본비고
1970빵과 뒷골목OO단편 영화, 영화 감독 데뷔작
1972휴식OO단편 영화
1972Zang-e TafrihOO단편 영화
1973The ExperienceOO아미르 나데리와 공동 집필, 첫 장편 영화
1974The TravelerOO
1975하나의 문제에 대한 두 가지 해결책OO단편 영화
1975Man ham mitounamOO단편 영화
1976A Wedding SuitOO파르비즈 다바예와 공동 집필
1976RanghaOO단편 영화
1977The ReportOO
1977선생님께 드리는 찬사OO다큐멘터리
1977자한-나마 궁전OO다큐멘터리
1977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OO
1977'Bozorgdasht-e moAllem''OO단편 영화
1978해결OO단편 영화, 영어로는 Solution No.1이라고도 함
1978Rah Hal-e YekOO단편 영화
1979First Case, Second CaseOO
1979가지에-에 셰클-에 아발, 가지에-에 셰클-에 두 웜OO다큐멘터리
1980운전자XO
1980정돈과 무질서OO단편 영화
1980Dandan DardOO단편 영화
1981Be Tartib ya Bedoun-e TartibOO단편 영화
1982합창단OO단편 영화
1982HamsarayanOO단편 영화
1983Fellow CitizenOO다큐멘터리 영화
1983함샤리OO다큐멘터리
1984First GradersOO다큐멘터리 영화
1984아발리하OO다큐멘터리
1987Where Is the Friend's Home?OO코케르 3부작의 첫 번째 영화
1987The KeyXO
1989HomeworkOO다큐멘터리 영화
1990Close-UpOO다큐픽션 영화
1992Life, and Nothing More...OO코케르 3부작의 두 번째 영화
영문 제목은 And Life Goes On
1994Through the Olive TreesOO코케르 3부작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영화
1994SafarXO영문 제목은 The Journey
1994키아로스타미의 세계XX출연
1995The White BalloonXO
1995해결OO단편 영화
1995아바스 키아로스타미OO뤼미에르와 컴퍼니의 일부, 단편 영화
1995RepéragesOO옴니버스 À propos de Nice, la suite의 한 편, 단편 영화
1995킹 오브 필름/거장들의 60초OO옴니버스, 단편 영화
1997Taste of CherryOO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1997빛의 탄생OO단편 영화
1999Willow and WindXO
1999The Wind Will Carry UsOO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1999볼테 셈프레, 아바스!XO단편 영화
2001ABC AfricaOO다큐멘터리 영화
2002The Deserted StationXX키아로스타미의 스토리 컨셉
2002TenOO다큐픽션 영화
2002여행 중에XX감수
2003Crimson GoldXO
2003Five Dedicated to OzuOO다큐멘터리 영화
영문 제목은 Five
200410 on TenOO키아로스타미 자신의 영화, 특히 Ten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2005TicketsOO에르마노 올미, 켄 로치와 공동 연출
에르마노 올미, 폴 라버티와 공동 각본
2005White PagesOO단편 영화
2005키아로스타미의 길OO단편 영화
2006Men at WorkXX키아로스타미의 초기 스토리 컨셉
2006빅토르 에리세-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서신OO유명 감독 빅토르 에리세와의 협업
에리세가 각본 및 연출
2006Roads of KiarostamiOO다큐멘터리
2007페르시아 카펫OO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나요? 부분만 연출
각기 다른 이란 감독들이 참여한 Persian Carpet의 15개 에피소드 중 하나
2007다가갈 곳이 있나요?OO이란의 여러 감독이 각각 연출한 페르시아 카펫의 15개 부분 중 하나, 단편 영화
2007RugOO단편 영화
2007로미오는 어디에?OO옴니버스 모두의 시네마의 한 편, 단편 영화
2007Kojast jaye residanOO다큐멘터리
2008ShirinOO
2010Certified CopyOO
2010NoOO다큐멘터리
2012Like Someone in LoveOO
2012Meeting LeilaXO
2013레몬 공장의 소녀XO연출자 키아라 마라논이 각본을 쓰기도 함
2014갈매기 알OO다큐멘터리
2016Final ExamXO사후 개봉작, 키아로스타미의 스토리 컨셉, 사망 전
아델 야라기가 각본, 연출
201724 Frame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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